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70 방콕 아시안 게임 (문단 편집) == 유치과정 == 원래 이 대회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개회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실론(현재의 [[스리랑카]])도 유치 신청에 나섰지만 철회했다. 그런데 [[북한]]의 [[북한/대남 도발|군사 도발]] 위협 및 [[경제]]개발 우선의 이유로 재정상의 문제가 발생하여 한국 측이 유치권을 반납하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김현옥]] 서울시장 기간 적극적인 서울 개발로 [[고가도로]] 건설, [[시민아파트]] 건축, [[세운상가]] 건설, [[밤섬]] 폭파를 통한 [[여의도]] 확장, [[한강]] 방조제 건설 등 각종 건설사업을 벌였는데 이의 반대 급부로 재정이 아슬아슬했고 지하철 건설하기에 삽을 뜨기 힘든 상황에 아시안 게임까지 유치했다가 서울시가 파산할 정도라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개최 과정에서 나왔던 잡음들이 1960년대 후반에 벌써 터졌다는 얘기이다.] 결정적으로 1968년 1월 [[김신조 사건]]이 발생하면서 북한의 테러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대테러 비용으로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진짜로 개최했다가 중앙정부 재정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상황이었다.[* 당시의 남북관계, 북한의 도발사, 이런 것을 보면 오히려 김신조 사건이 일종의 반면교사였다. 만일 이런 사건 없어서 예정대로 아시안게임을 개최했다면 북한의 테러가 일어날 확률은 거의 99%였다. 당장 김신조 사건 이외에도 60년대 말만 보면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굵직한 대남 도발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이는 선견지명 있는 조치였는데,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뮌헨 올림픽 참사|테러 참사]]가 발생했고 이후 올림픽 대테러 예산이 급증하여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을 개최했던 몬트리올이 파산하여 특별세 등을 통해 30년만에 빚을 메운 사례가 발생했다. 그래서 한국 측은 유치권을 반납해버렸고 결국 이전 대회를 개최했던 [[태국]] [[방콕]]이 '''억지로''' 떠안게 되었다. 원치도 않는데 한국의 유치권 반납으로 인해 억지로 한 도시가 아시안 게임을 두 번 개최를 하게 된 특이한 케이스. 물론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10개 국에서 개최비용을 보전해 주기는 했지만 너무 모자라서 [[태국]]에서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이 대회의 유치 포기로 벌금 20만 불을 지불하게 된다.[* 지금이야 큰 금액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당대의 달러 가치와 소득 수준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 물론 개최 비용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당시 한국과 태국의 경제적인 격차가 크지 않았고 태국이 이때부터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에 있어서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했던 시기였으며, 당시에는 태국도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을 하던 시절인지라 아주 어려웠던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진짜로 경제상황이 어려웠을 때 치렀던 아시안 게임은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이다. 이후 이 같은 일은 [[1978 방콕 아시안 게임]]의 개최 과정에서도 다시 한 번 반복되었다. [[대한민국]]은 1986년에서야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게 된다. 이후로는 [[2002 부산 아시안 게임]]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유치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